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단 편집)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 그렇게 이번에도 최종예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또 다시 미끄러진 후 또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시기에 북한 축구는 8강 신화를 쓴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 이어 다시 한 번 나름의 중흥기를 맞았다. [[안영학]]과 [[정대세]], [[량용기]] 등 [[K리그]]와 [[J리그]] 등지에서 활약하는 [[조총련]]계 선수들의 대표팀 입성이 늘어났고 더불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 급의 유럽 빅리그는 아니지만 주장 홍영조를 비롯해 러시아, 스위스 등 나름 유럽 군소리그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들이 대거 입성해 그 동안 폐쇄적이었던 북한 축구의 견문을 넓혔다. 그리고 덕장으로 이름난 [[4.25 체육단]] 감독 출신 대표팀의 수장 [[김정훈(북한)|김정훈]] 감독이 국내파 선수들과 해외파 선수들을 하나로 잘 통합하여 다시 한 번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꿈꿨다. 이번 대회에서도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보장받았다. 이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43개 신청국들 중 3차 예선에 직행하는 5개 팀을 제외한 38개 팀을 19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게 되어 있는데, 1차 예선의 승자 19개 팀 가운데 상위 11개 팀은 3차 예선에 직행하게 되고, 2차 예선에 진출한 하위 8개 팀은 다시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 2차 예선의 승자 4개 팀은 3차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3차 예선은 20개 팀(1차 예선 승자 11개 팀, 2차 예선 승자 4개 팀, 3차 예선 직행 5개 팀)을 5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는데, 각 조의 1, 2위를 기록한 10개 팀은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최종 예선은 3차 예선을 통과한 10개 팀을 2개 조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는데, 각 조 1, 2위를 기록한 4개 팀은 본선에 직행하게 된다. 각 조 3위를 기록한 2개 팀은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며,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오세아니아 예선 1위 팀과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르는데, 대륙간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북한은 1차 예선부터 시작하였다. 북한의 1차 예선 상대는 몽골이었다. 당시 북한 대표팀은 A팀과 B팀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1차 예선에서는 [[조동섭]] 감독이 지휘하는 B팀이 나갔고 만일 3차 예선 진출에 성공하면 그 때 [[김정훈(북한)|김정훈]] 감독이 지휘하는 A팀이 나가기로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치른 1차전 경기에서 북한은 전반 14분에 터진 박철민의 선제골과 전반 24분, 32분, 후반 36분에 터진 정철민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 : 1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차전 홈 경기에서도 박철민의 멀티골과 김국진, 정철민, 전광익의 릴레이 골로 5 : 1 대승을 거두어 2전 전승, 합산 점수 9 : 2의 성적으로 가볍게 1차 예선을 통과했다. 북한은 1차 예선 생존자 19개 팀 중 피파랭킹으로 상위 11위 안에 들었기 때문에 2차 예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3차 예선으로 직행했다. 3차 예선부터는 앞서 말한대로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A팀이 나섰다. 북한은 3차 예선에서 대한민국,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3조에 속했다. 1차전 요르단 원정 경기에서 북한은 전반 44분에 터진 홍영조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 승리를 기록해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겼다. 그리고 2차전 상대는 대한민국이었다. 본래 이 경기는 북한의 홈 경기이므로 평양에서 치러야 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엔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이 때 남북 관계는 심각할 정도로 경색되어서 북한 측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했다. 그래서 [[FIFA]]는 이 경기를 중립 지역인 중국 상하이에서 치르도록 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홈 경기는 정상적으로 서울에서 치렀고 [[인공기]]도 게양되었으며 북한의 [[애국가(북한)|애국가]]도 정상적으로 연주되었다.] 이 경기에서 북한은 특유의 밀집수비를 바탕으로 한 [[늪 축구]]로 대한민국을 괴롭히며 귀중한 0 : 0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1점을 추가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조 최약체 투르크메니스탄을 상대로는 답답한 공격력을 보인 끝에 0 : 0 무승부에 그쳤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3조의 순위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1승 2무(승점 5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4를 기록한 대한민국이 +1에 그친 북한에 앞서 1위를 차지했고 북한이 2위를 차지했으며 요르단이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그 뒤를 이어 3위에 있었고 1무 2패(승점 1점)에 그친 투르크메니스탄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4차전 투르크메니스탄과의 홈 경기에선 후반 27분, 최금철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으로 승리해 승점을 8점으로 추가했다. 3위 요르단은 대한민국에 0 : 1로 패배하면서 승점 차가 4점으로 벌어졌다. 이제 5차전 요르단과의 홈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하게 되는 것이다. [[양각도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홈 경기에서 북한은 전반 44분과 후반 27분에 홍영조가 2골을 터뜨리며 2 : 0 승리를 기록해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6차전 대한민국 원정 경기에서도 0 : 0 무승부를 기록하며 3승 3무(승점 12점)의 전적으로 무패를 기록했다. 6경기 4득점 무실점이란 기록이 말해주듯 북한은 공격력은 심각할 정도로 빈공이었지만 단 1골도 내주지 않는 강력한 수비의 힘으로 최종예선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본선행은 영 쉽지 않아 보였다. 최종예선 조 추첨 결과 북한은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인 B조에 속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껄끄러운 상대였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북한이 단 1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천적]] 중 천적인 팀이었다. 그래서 북한의 본선 진출을 예상하는 이는 당시만 해도 없었다. 남북한 본선 동반 진출이란 것도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 정도였지 그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다시피 했다. 북한의 1차전 상대는 아랍에미리트였다. 원정 경기라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예상을 깨고 최금철과 안철혁이 일찌감치 골을 터뜨리며 2 : 1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2차전 경기는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였는데 이 경기 역시 3차 예선 때와 마찬가지로 평양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서 경기를 했다. 이 경기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의 맹공을 밀집수비로 막아낸 후 후반 20분, 홍영조의 [[페널티킥]] 골로 오히려 1 : 0으로 앞서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4분 후에 한국의 신예 [[기성용]]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1 : 1 무승부에 그쳤다. 그리고 3차전 상대는 천적 이란이었다. 이 경기에서 북한의 에이스 인민 [[웨인 루니|루니]] [[정대세]]가 골을 터뜨렸지만 또 [[아자디 스타디움|아자디 징크스]]를 넘지 못하며 1 : 2로 패배했다. 그러나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4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선 추운 평양의 2월 날씨에 사우디 선수들이 고전하는 틈을 타 전반 29분에 터뜨린 '북한의 [[마라도나]]'란 별명을 가진 문인국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으로 승리해 드디어 사우디 징크스를 깨뜨렸다.[* 이 경기 패배로 인해 사우디의 [[나세르 알 조하르]] 감독은 즉시 경질되었다.] 4차전까지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대한민국이 2승 2무(승점 8점)로 1위, 북한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2위, 이란이 1승 3무(승점 6점)로 3위,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1무 2패(승점 4점)로 4위, 아랍에미리트가 1무 3패(승점 1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처음엔 월드컵 본선 진출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했던 북한 선수들은 서서히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5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도 전반전엔 고전했으나 후반전에 박남철과 문인국이 나란히 골을 터뜨리며 2 : 0 승리를 거두어 3승 1무 1패(승점 10점)의 전적으로 1경기를 덜 치른 대한민국을 제치고 조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6차전 대한민국 원정 경기에서 북한은 끝까지 대한민국의 파상공세를 잘 방어해냈고 [[정대세]]가 좋은 득점 찬스를 잡았으나 그의 헤더 슛이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이운재]]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는 불운을 겪었다. 그리고 후반 41분에 대한민국의 [[김치우]]가 찬 [[프리킥]]이 주장 홍영조의 손에 맞고 굴절되는 불운을 겪으며 결국 0 : 1로 석패해 다시 2위로 내려갔다. 7차전 상대는 천적 이란이었다. 당시 북한의 승점은 10점이었고 이란의 승점은 6점이어서 두 팀 모두 승점 3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특히 이란으로서는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1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북한과의 승점을 1점 차로 좁힐 수 있었다. [[양각도축구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 팀은 모두 결정적인 기회를 이따금씩 놓치며 결국 헛심 공방 끝에 0 : 0 무승부를 거두었다. 같은 날 대한민국이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거두며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북한이 휴식할 때 대한민국 VS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VS 아랍에미리트의 경기가 열렸다. 전자의 경기는 0 : 0 무승부로 끝나며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대한민국의 조 1위가 확정되었고 이란은 고전 끝에 [[알리 카리미]]의 결승골로 아랍에미리트를 1 : 0으로 꺾었다. 경기를 모두 치렀고 이미 탈락이 확정된 아랍에미리트를 제외한 나머지 4팀은 이제 모두 1경기씩 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 때 B조의 순위는 4승 3무(승점 15점)의 대한민국이 남은 최종전에 관계 없이 조 1위를 확정지었고 남은 조 2위를 놓고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3팀이 경쟁하게 되었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2무 2패(승점 1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2를 기록한 북한이 0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앞서 2위를 차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3위였다. 그리고 2승 4무 1패(승점 10점)를 기록한 이란이 4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먼저 대한민국 VS 이란의 경기가 열리고 뒤이어 사우디아라비아 VS 북한의 경기가 열렸다. 북한으로서는 앞 경기에서 이란이 대한민국을 이기지 못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에 성공할 수 있다. 먼저 열린 대한민국과 이란의 경기에선 주장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란의 승점은 11점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제 유리해진 것은 북한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하면 44년 만의 본선 진출이 이루어진다.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전원 수비에 나서는 극단적인 벌떼 수비로 경기에 나섰다. 갈 길이 급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초반부터 라인을 높이 끌어올리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북한 골키퍼 [[리명국]]은 신들린 선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슛을 막아내고 또 막아내며 애간장을 태웠다. 북한은 경기 도중 미드필더 [[김영준(북한)|김영준]]이 퇴장 당하여 수적 열세에 놓이는 불운을 겪었지만 그런 불운도 본선을 향한 그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0 : 0 무승부로 끝이 났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3무 2패를 기록해 승점은 12점으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 사우디아라비아가 0으로 북한이 2골 더 앞서 조 2위를 확정해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3위에 그친 사우디아라비아는 플레이오프로 떨어졌으며 4위 이란은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조 3위 팀 간 플레이오프에서 [[바레인 쇼크|바레인에 원정 다득점 우위의 원칙에 밀려 탈락했고]] 그 바레인 역시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뉴질랜드에 합산 점수 0 : 1로 패배해 탈락하며 중동 팀은 예선에서 [[올킬]]을 당했다.] 이로서 꿈에서만 그렸던 남북한 동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현실이 되었다. 분단 국가가 함께 월드컵 무대에 오른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당시 서독과 동독이 함께 본선에 오른 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서독이 개최국이어서 지역예선을 면제받았고 두 나라 모두 예선을 치러 본선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 북한은 이번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4팀 중 유일하게 1차 예선부터 치른 팀이었다. 이렇게 44년 만에 월드컵에 다시 등장했건만, 북한에게 [[FIFA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너무도 냉혹했다. 조 추첨 결과 북한은 톱 시드 팀이 월드컵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이었고 비 톱 시드 유럽 팀 중 가장 강한 포르투갈, 아프리카 최강자인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G조|G조]]에 편성된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도 16강 진출을 장담하기 힘들 만큼 상당히 험난한 조 편성이었다. 물론 북한의 전력으로 볼 때 안 힘든 조가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미국 대신 잉글랜드가 톱 시드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C조|C조]]에 들어갔거나 뉴질랜드 대신 이탈리아가 톱 시드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F조|F조]]에 들어갔다면 그래도 승점을 따낼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은 있었는데 말이다.[* 실제로 본선에서 잉글랜드와 이탈리아가 심하게 비실거렸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정도 비벼볼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G조에는 아무리 봐도 북한이 승점 1점이라도 딸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북한이 승점 1점이라도 기록하면 엄청 잘 하는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결전의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